<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앨버트 잭 지음, 김아림 옮김, 리얼부커스, 2016.4, 361쪽)을 읽고

김칠성(백영고 역사교사/서울대 박사) 

1.
역사는 승자의 기록과 평가로 이루어졌다고 과언은 아니다. 역사란 승자 독식의 현재와 과거의 대화로 해두기로 하자. 그렇다. 일등에게만 환호하고 그 이외의 자들에게는 쌀쌀 맏게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마치 선운사의 동백(춘백)이 필 때면 인산인해를 이루어 꽃구경을 가지만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버리면 발길을 끊고 마는 상춘객처럼 말이다. 가까운 예를 보자. 올해 2016년 7급 공무원 경쟁률이 1:288이다. 합격한 1명만 존재하고 나머지 288명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온갖 영예와 특혜는 한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나머지는 어찌되는가? 진 자, 실패한 자, 거부된 자는 모멸, 조롱, 혹평을 받는다. 

2.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전체 구조적 틀 속에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역사를 보는 입장은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인간이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용어 혹은 관점이 있었을 뿐이다. 알려진 드러난 역사는 극히 일부의 내용이다.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감추어진 역사가 있는가? 아마도 이것이 전부일 텐데 말이다. 이긴 자, 갖은 자, 능력있는 자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3.
‘흑역사’란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과거의 일을 가리키는 신조어이다. 인간이 시장의 효용가치에 따라 휘둘리는 사회에서 삶의 존재가 늘 불안하다. 더군다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더욱 그러하였다. 대부분은 생존 때문에 모멸, 조롱, 치욕을 감내하면서 산다. 이때 이야기가 나오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호흡이 급해진다. 울화가 치민다.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너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이것이 바로 흑역사이다. 혹자는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면 위안을 삼으라고 한다. 이는 극히 소수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다수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괴로움을 가지고 사는 산다. 

4. 그렇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는 우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00년 전의 한 인물을 보기로 하자. 사성(史聖)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 미쳐있었다. 〈사기〉는 사마천 자신의 흑역사를 쓴 것이다. 그런데 차라리 죽는 것이 편했을텐데 그 치욕과 모멸을 어찌 견디고 〈사기〉를 썼는가?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7년 후 태사공은 이릉의 화를 당해 감옥에 갇히자 이에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이 내 죄란 말이냐, 이것이 내 죄란 말이냐, 몸은 궁형을 당해 쓸모없이 되었구나." 그리고 물러가 깊이 생각한 뒤 말하기를 "무릇 <시경>과 <서경>이 간략하나 뜻이 깊은 것은 그 마음속의 뜻을 실현하고자 해서였다. 옛날에 서백은 유리에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풀이하셨고 공자께서는 진과 채에서 고생하시고 <춘추>를 지으셨으며 굴원은 추방당하고 나서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실명하고 나서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리고서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가 촉나라로 쫓겨나고서 <여씨춘추>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으며 한비는 진나라에 갇히고 나서 <세난>과 <고분>편을 지었다. <시경> 삼백 편도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러한 분들은 모두 마음에 울분이 쌓였으나 그의 도리를 표출해 낼 수 없어서 지난 옛일들을 서술하여 후진들을 생각했던 것이다."(태사공자서)

5. 요새 출판사에서는 될 수 있으면 책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내는 것 자체가 손해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사업이니만큼 이익을 내야한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앨버트 잭 지음, 김아림 옮김, 리얼부커스, 2016.4, 361쪽)가 나왔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보고 야사를 다룬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여러 면에서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쉬운 내용이고 번역도 좋다. 주제도 흥미롭고 어떤 내용은 아는 내용도 있다. 기획 의도도 신선하다. 이 책이 널리 읽혀졌으면 한다. 아픈 사람들의 마음에 큰 위안과 재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흑역사를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이 많다. 하소연도 못하고 내색도 못하고, 자기주장도 못하고. 이런 이들에게 이 책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 이는 나에게도 해당한다.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의 품격> 저자 소개  (0) 2018.10.16
(서평)라커룸 리더십  (1) 2016.07.31
천잰가?  (0) 2015.07.17
Posted by 뻘쭘대왕
,